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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인터뷰 - 김문환 형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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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윤희
조회 1,029회 작성일 11-10-12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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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우리 새누리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시던 김문환 형제님께서 다음 주 한국으로 떠나신다는 소식을 접하고, 저희  새누리 웹편집팀에서는  토요일 늦은 오후 이삿짐싸시느라 분주하신 김문환 형제님과 김윤희 자매님댁을 찾았습니다.  다음은 새누리 웹편집팀 (이하 웹으로 표기)과 김형제님내외분(이하 김으로 표기)과의 인터뷰내용입니다. 
 *        *       *
김문환2.JPG 

웹) 안녕하세요. 우선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누리 웹편집팀의 공식구성이후 처음 인터뷰를 하시는 영광을 차지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웃음)  하지만 김형제님을 인터뷰하는 계기가 저희로서는 많이 섭섭하고 아쉬운 것이라 한편으로는 차라리 이런 인터뷰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 하는 마음이 더 큽니다.
우선 가족들 소개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최근 댁에 큰 경사가 있었는데 새식구도 소개해 주세요.


김) 집사람 김윤희 자매와 84년에 결혼해서 세 아들을 자녀로 두고 있습니다. 
우선 큰 아들 규영이는 Cal Poly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후 한국에서 취업해 있는 동안 배우자를 만나 지난 달 결혼해서 현재 뉴욕맨하탄에 거주중입니다.  이번에 새식구가 된 한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프랑스에서 수학한 후 한국에서 불문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서울대대학원 국제학 석사과정에 재학중입니다. 둘째는 규진이고 현재 UC Davis 3학년으로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막내 규인이는 팔로알토 하이스쿨 10학년에 재학중입니다. 

웹) 신앙생활은 언제부터 하시게 됬나요? 

김) 한국에서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교회생활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이중적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일부 기독교인들에 대한 반감 그리고 교회생활을 시작하면 사생활에 제한이 생긴다는 부담감때문에 미국에 와서도 바로 교회등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둘째 규진이가 90년도에 태어났는데 규진이가 선천적으로 심장이 좋지않아 생후한달부터 병원을 데리고 다니게 되면서부터 ‘혼자의 힘으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나의 어려움을 의지할 곳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후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미국교회를 출석하다 한인교회로 옮기면서 91년도에는 세례를 받고 성가대로 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웹) 새누리에는 언제 오셨고 어떤 계기로 출석하게 되셨나요?

김) 1993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후 가까운 장로교회를 출석하게 되었는데 점차 교단의 특성과 시스템에 대해 고민하다가 2000년에 새누리침례교회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웹) 미국생활중 가장 어렵거나 힘들었을 때 그리고 가장 기뻤을 때는 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김) 부모님을 잘 섬기는 것이 항상 제 삶에 있어 우선순위였습니다. 그래서  유학시절초기에 한국의 faculty position에 여러번 지원했었습니다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좌절감이 컸습니다.  그리고 최근까지 다녔던 회사에서 manager 로서 직원들을 관리하는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저도 성장했고 배운 것 또한 컸습니다. 그리고 기뻤을 때는...  제가 처음 미국에서 취업인터뷰를 가게 되었는데 그 회사 인사담당자가  다른 회사를 추천해주었습니다.  그 추천받은 곳에서 인터뷰하고 당일  취업이 되었는데 그 순간이 기억에 납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결과고  당시 Buffalo의 사람들이 동경하던 따뜻한 캘리포니아에 있는 회사에서 일하게 되어 참 기뻤습니다. 

웹) 다음 주에 한국으로 가신다고 하는데 어떤 사유로 이주하시나요? 언제 출국하시고 얼마나 계실 예정인지요.

김) 내일 모레 월요일인 8월 29일에 저 먼저 출국합니다.  집사람은 막내학교문제와 집정리 문제를 마저 처리하고 11월 말 출국할 예정이구요. 제가 일하게 되는 곳은 일산에 있는 국립암센터 내 항암제신약개발연구단이고  5년 계약으로 근무하게 됩니다.  제가 하게 될 일은 기존에 해오던 연구 반, 새롭게 시작하는 부분이 또 나머지 반 정도라 흥분도 되고 기대가 됩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친지분들은 너무 좋아하시며 아직까지 실감이 안난다고 하십니다.  

웹) 새누리교회에 출석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또는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꼭 나누고 싶은 체험이나 이야기가 있나요?

김) 제가 예배부장시 당시 상황이 너무 어려워 일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임했는데 그 것이 항상 마음의 짐이 됬습니다.  어쨌거나 저의 책임이기때문에 완수했어야 하는데 아쉬움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로마서 성경공부를 인도 했었는데 당시 제 자신이 더 많은 은혜를 받고 삶의 여러면이 변하게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웹) 김형제님께서는 YM과 CM에서 오랫동안 교사로 섬기셨습니다. 특히 당시 같이 사역하셨던 분들이 김형제님에 대한 많은 추억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편집팀께 전해주셨습니다.  YM과 CM에서 섬기시는 동안 특별히 추억에 남는 일들이 있으시면 나눠주세요.   

김) CM사역시 계속 전도사님들이 바뀌어서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설교를 준비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제 차례가 됬을때 여러 시청각자료를 가지고 설교를 했는데 아이들이 반응이 좋은 것을  보고 기뻤습니다. 또 YM사역시 처음에는 영어때문에 애를 먹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학년이 올라갈 수록 서로 친해져서 아이들각각이 너무 귀하게 생각되고 특별한 관계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Youth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감동이 생길정도로 애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웹) 앞으로 한국에서의 특별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김) 저희 집안에서 저와 어머니를 제외하고 아무도 교회를 안 다니십니다.  저희 집안의 제사를 추도예배로 바꾼지도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 제가 저희 집안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있으심을 느낍니다.

웹) 그럼 선교사로 나가시는 건가요? (웃음)

김) 뭐… 그렇게 까지야. 

웹) 자매님의 계획은 어떠신가요? 취업이라던가.

김) 아직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대로 되겠지요.

웹) 새누리에서 가져가고 싶은 것은? 

김) 새누리형제, 자매님들 (웃음)

웹) 다시 새누리에 오시면 어떤 부서에서 섬기고 싶으신가요? 

김) 저는 가르치는 섬김을 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목자학교, YM같은…

웹) 현재 형제님께 가장 힘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김) 김윤희 자매입니다. (웹편집팀들의 감탄사 연발)

웹) 인생을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 세 가지가 있다면? 

김) 인내, 기쁨,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웹) 나누실 기도제목이 있습니까? 

김) 아직 규인이가 다닐 학교가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제가 그 동안  미국에서 해왔던 신앙생활과 성결한 생활을 한국에서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기도부탁드립니다.   

웹) 마지막으로 새누리교회와 교우들에게 바라거나 당부하고 싶으신 것은?

김) 저는 새누리교회 여러분들이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떠나는 것이 너무 섭섭합니다.  우리 새누리교우들은 개개인이 모두 뛰어난 탤런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겸손히 교회를 섬기십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신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시려했고 오랫동안 인내하셨습니다. 이번 규영이 결혼식때 여러분들이 만들어주신 축하비디오도  참 감사하고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상영하기가 좀 민망할 것 같았는데… (웃음)  규영이 내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그 비디오를 보신 분들도  좋아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의  사랑과 배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많고 참 좋으신 분들이 많은 새누리입니다. 그리고 저는 앞으로 우리교회가 젊은 교회가 됬으면 합니다. 30-40대가 교회가 계획해나가는 일들의 주축이 될수 있도록  장년들은 몸으로 섬기며  또 교회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주는 교회가 됬으면 좋겠습니다.
 
웹) 형제님, 한국에서의 새로운 생활도 지금까지처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인도하시며 예비하시는 날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잠시 나가시는 거니까 저희도 아쉬운 마음을 한 쪽으로 접어두고 떠나시는 길을 축복합니다.  곧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셔서 한국생활을 통한 더 많은 경험과 지혜로 새누리를 섬겨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시간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       *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했던가요. 숱한 만남과 이별이 일어나는 이민생활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이 말은 어찌보면 더 이상 가슴을 울리지 못하는 무심한 표현이 된 듯도 합니다.   하지만 이젠 괜찮겠거니하고  조심스레 마음의 무장을 해제를 할 때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소식이 있습니다.   ‘이번 주 xxx 형제님/자매님 가족이 oo로 떠나십니다.’  역시나 한 교회를 섬기며 기쁨과 슬픔, 눈물과 웃음을 함께하던 형제자매들과의 작별은 여전히 처음과 같은 무게로 우리의 마음을 먹먹하게 합니다. 
그러나 거자필반(去者必返) 이라고도 했으니 언젠가 다시 한 자리에 모여 같이 말씀과 교제를 나눌 그 날을 기약하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형제자매들로서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항상 성령안에서 하나될 수 있음을 믿으며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작별인사 대신 ‘내일 교회에서 뵙겠습니다’ 라는 가벼운 인사를 드리고 형제님댁을 떠났습니다.

새누리 교우들이 나누는 ‘김문환 형제님은 이런 분’ 

“CM에서 일손이 부족할때 하나님께서 김문환 형제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김문환 형제님은 아침마다 CM 교사 모임에서 QT나눔을 주관 하셨고  겸손과 평안한 나눔,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의 사랑을,  개인적으로 저에겐 올바른 신앙관을  여러 사역을 통해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그당시  교회를 떠날 생각을 여러번 했었던 저로서는 정말 형제님의 주일 나눔과 신앙의 선배로써 너무나 값진 믿음의 조언들은 저에게 평생 잊지 못한 신앙의 마음을 갖게 해주셨네요. 예전 저가 데려 왔던 믿지 않던 친구가 김문환 형제님의 따듯한 말씀과 성경책 선물이 계기가 되서 지금은 타교회에서 주일학교 봉사를 하며 큰 주님의 일꾼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가끔 그 친구가 김문환 형제님 안부를 묻곤 합니다. 항상 QT나눔을 하다보면 아내와 김문환 형제님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눕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주의 사랑을 실천하신 형제님을 지금껏 보면서 저 자신도 형제님의 믿음과 주님 항상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곳을 떠나 신다는 말씀에 잠시 놀랐지만 어느곳에서든지 항상 주님의 삶을 실천하시는 형제님, 너무 감사드리고요, 앞으로 멀리 계시지만 주안에서 항상 평안하시고요, 건강하세요!” (최상연 형제)

“김문환 형제님은 CM과 YM에서 선생님으로 섬기셨습니다. 아이들을 많이 좋아하시고,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 많이 하신 분입니다. 2007년 김문환 형제님이 VBS때 예수님의 역할을 하시던 때가 기억나네요.  CM에서 섬기실 때, 주일 9시면 함께 성경공부를 하였는데, 5시 30분/6시에 필드에 나가 골프를 치시고, 9시에 시간맞춰 오셨던 아주 부지런한 분입니다. 아마 평일 새벽기도도 오랫동안 나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양준모 형제)

"오래전 교회에서 custodian 을 고용하기전의 일입니다.
주중 밤마다 교회에 나와 화장실 6군데를 말끔히 청소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우리교회 화장실들은 다 큽니다.
아무도 몰랐지만 나중에 밝혀진 그 분의 정체는 다름아닌 김문환 형제님이였지요.
나중에는 장모님도 같이 오셔서 화장실 사역을 "동역"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남이 미처 신경을 못쓰는 곳에서 말없이 섬김을 실천하는 분이 김문환 형제입니다." (백윤기 형제)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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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일님의 댓글

손경일 작성일



김 형제님 아까도 함께 기도했지만 참으로 아쉽습니다...그러나 헤어짐이 있으면 또 만남이 있는것을 알기에 그 만남을 기대합니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기도 가운데 "새누리인" 임을 서로 기억해요..

잘 정착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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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연님의 댓글

송지연 작성일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참...

우리 스티븐을 4.5년 계속 가르쳐 주신 형제님-. 유스 사역자가 바뀌고 힘들 때에도

계속 같은 자리에서 아이들의 영적 스승이 되어주신 형제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한국에서도 주님 맡겨주신 소명을 충성되이 감당하며 승리하실 것으로 믿고 기도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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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모님의 댓글

양준모 작성일

김 문환 형제님.


로마서 공부 끝나고 선물로 주신 책이 저와 제 자매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의 하나입니다.


저희 가족 한국 가면 꼭 뵙겠습니다. 제 부모님과 가까운 곳에서 사시니 같은 교회 다니시면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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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님의 댓글

최윤희 작성일

김형제님께서 인터뷰동안 위의 기사화된 내용보다 더 많은 얘기를 나눠주셨는데 지면의 제한때문에 이곳에 모두 올리지 못한 것을 안타깝고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편집팀만 보기엔 너무 아까운 다른 사진들도 다 올리지 못했구요. 

한국에 계신동안에도 저희 새누리 웹에 자주 방문하셔서 소식 나눠주세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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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호정님의 댓글

류호정 작성일

김윤희자매님... 침례식 때 마다  뒷편 화장실에서 너부러진 수건들과 바닥에 흐르는 물들을 닦으며 묵묵히 섬기시던 모습은 제가 하늘나라에 갈 때 까지 잊지 못할겁니다. 새누리에 남아 있던 제 (영적)마음의 고향과 같은 가족들 중 마지막 가정이셨는데...


 


하나님께서 두분을 위해 새로운 삶을 한국에다 예비하시나 봅니다. 어느 곳에 심기우시든지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리며, 그분을 진정으로 기쁘게 하실 형제님과 자매님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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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숙님의 댓글

장근숙 작성일

언젠가 때가 되면 주님 안에서 참 좋은 만남의 시간을 개인적으로 갖을 수 있고 친해 지기를 바라며


두 분을 멀리서 해바라기만 하고 있다가 주일날 주보 보곤 충격을 받았읍니다.


그정도로 아무 연결도 없는 상태인데 충격을 받았다면 누구라도 웃겠지만, 좋은 분들을 알아 보는 감각은 귀신 같답니다.


한결같이 겸손하시면서도 옳지 않은 것은 용납하지 않으시고 또한 자신들을 있는 그대로 내 보이며 솔직하신


김문환 형제님 그리고 김윤희 자매님 !!!


정말 섭섭하고, 용기를 내어 믿음생활의 조언을 진작 청하지 못했던 것을 가만히 후회 합니다.


어디를가시든 거기 두분이 계시기에 참 위로가 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아 주세요,


비록 때를 기다리면서 알리지 못하는 저 같은 사람들이더라도---.


그리고 주 안에서 끝까지 승리하는 삶을 사실 분들인 것을 알기에 참 좋습니다


건강하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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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숙님의 댓글

김 숙 작성일

에고 에고~


사랑 목장 모임 때마다 성경 공부 인도해 주셨던 형제님 떠나시면 이제 누가 인도하남유~~~


이 부족한 목자 옆에서 늘 격려해 주시고 말없이 도와 주셨는데...흑 흑


 


그나 저나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절묘!


형제님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 있도록 목자 훈련이 9월 초로 이미 오래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으니~


아마도 하나님께서 형제님의 한국행을 오래 전부터 계획해 놓으셨던 것 같아요.


 


저를 비롯한 사랑 목원들~ 섭섭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나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순종!  떠나시는 걸음 걸음에 축복에 축복을 더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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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혜성님의 댓글

오혜성 작성일


김문환 형제님, 김윤희 자매님 !


주님의 겸손을 보여주신 귀한 형제님과 자매님이세요.


늘 "yes"로 순종의 본을 보여주셨구요.


넉넉한 이해와 배려...  제 기억에 늘 이렇게 남아 닮고 싶은 분들이십니다.


한국에서 맡겨주신 귀한 사명 잘 감당하시고 다시 새누리에서 함께 주님 섬겨요.


영육간 강건함을 기도드릴께요.


자매님은 아직 더 뵐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 지 ...


놀란 섭섭한 소식에 오히려 감사가 넘침은 주님이 함께하심 이겠지요?


소식 종종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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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기님의 댓글

백윤기 작성일

희정 자매님, 반갑습니다.  

유학생활을 주님의 은혜가운데 잘 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새누리에도 참 좋은 청년이 오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