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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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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CBC오피스
조회 726회 작성일 22-10-2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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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생이 캠퍼스를 열심히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교수가 학생을 세우고 묻습니다. “학생 왜 이렇게 열심히 뛰어가나?”  학생이 대답합니다. “클래스에 가서 공부하려고요.” 교수는 다시 묻습니다. “공부해서 뭐하려고?” 학생이 대답합니다. “좋은 점수 받으려고요.” 교수가 다시 묻습니다. “좋은 점수 받은 다음은?” 학생은 “졸업해서 좋은 직장 가지려고요.”라고 대답합니다. 교수는 또 묻습니다. “좋은 직장을 가진 다음은?” 학생은 대답합니다. “좋은 짝을 만나 결혼하려고요.” 교수는 묻습니다. “결혼한 다음은?” 학생은 “아기도 낳고, 집도 사고…” 대답하자 교수는 “그 다음은?” 묻습니다. “나이 들어 은퇴하고 여행 좀 다니고…” 학생의 대답에 “다음은?”이라고 묻는 교수에게 학생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러다 보면 죽겠지요 뭐.” 그 대답을 들은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나눈 대화의 중간을 다 빼고 답하면 어떻게 되나?  왜 열심히 뛰어가나?” 학생은 잠시 생각한 후에 주저하며 대답합니다. “죽으려고요.”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실제는 죽음을 향해 매일 한 걸음씩 다가가는, 즉 죽어가는 중이라고 말해도 결코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인생은 그렇게 매일 죽어가는 것, 즉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는 우리는 다릅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땅에서 죽어가는 존재가 아닌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 땅의 죽음이 우리에게 결코 끝이 아님을 우리는 분명히 압니다.


얼마 전 한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목사로서 많은 장례식을 다녔지만 지난 장례식에서 본 자그마한 한 동판은 저에게 큰 도전을 주었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한 기둥에 붙어 있는 동판에는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새겨져 있었고 그 밑에는 사람들의 이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몇 명은 이름과 함께 출생일 그리고 사망일이 새겨져 있었지만, 몇 명은 출생일만 새겨져 있었습니다. 의아해서 자세히 보니 태어난 날짜들이 1971년, 1996년, 2000년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죽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가족의 이름들 즉 할아버지 부터 손주까지의 이름을 다 기록해 놓고 그 중에 돌아가신 분들은 그 사망일을 기록했지만 아직 살아있는 자손들은 출생일만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왜 굳이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장지에, 그것도 돌아가신 가족들과 함께 기록해 놓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연인지 그들의 성은 매튜였습니다. 분명 이들은 크리스찬들이고 돌아가신 분들과 살아있는 사람들을 함께 동판에 기록해 놓은 것은 누군가 가족 중에 돌아가실 때 이 곳에 와 그의 사망일을 기록하며 언젠가 나도 저 빈칸에 나의 사망일도 기록될 것이라는 것을 마음에 담을 수있도록 그래서 매일의 삶이 죽어가는 삶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살아가는 삶이 되는 의미있는 하루하루가 되도록 다시 마음에 사기도록 한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자신의 이름 뒤에도 언젠간 분명히 날짜가 사겨질 것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삶, 참으로 하루하루가 귀한 삶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삶은 결코 죽어가는 삶이 아닌 살아가는 삶일 것입니다…


저도 가족의 동판을 만들어야겠습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잠 7장2절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잠 7장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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