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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그리고 주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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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CBC웹
조회 1,647회 작성일 22-04-30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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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자존심이 있습니다. 자존심의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굽히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품위를 지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자존심의 주인은 바로 “나”입니다.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 나의 삶을 책임지려는 모든 것이 자존심입니다. 사람은 자존심이 조금이라도 상하는 일을 만나면 화가 나거나, 더러는 성격에 따라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주인인 내가 내 자신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자존심 때문에 싸우고,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살아갑니다. 


세상은 자존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자존심으로 살지 않습니다. 예수를 주라 고백하는 순간 우리의 자존심은 바로 ‘주존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의 주인은 ‘나’이지만 주존심의 주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예수를 주라 고백하며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주존심이 아닌 자존심으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3장에는 여섯 교회에 보내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칭찬만 받은 교회들, 칭찬과 책망을 받은 교회들이 있는데 유일하게 책망만 받은 교회가 있습니다. 바로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라오디게아라는 “백성의 정의”란 뜻으로, 수리아 왕 안티오쿠스 2세(262-246년경)에 의해 건설되어 그의 아내 ‘라오디케’의 이름을 딴 도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히에라볼리에서 남쪽으로 10㎞, 골로새에서는 서쪽 16㎞ 지점에 위치한 라오디게아는 브루기아 주의 교통, 무역, 금융의 중심지며, 면직과 모직 산업이 발달했던 도시입니다. 그런 관계로 라오디게아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웠고 도시 사람들은 부족함 없이 살았습니다.  A.D. 60년경에 발생한 대지진 때도 스스로의 힘으로 피해를 복구할 정도로 재력이 좋았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말씀하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교회라면 교회다워라”고 하신 것입니다. 왜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던 도시에 있던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께 책망만 받는 교회가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장20절


교회는 주님이 주인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문밖에서 서 계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문 열어다오, 내가 들어가서 너와 같이 교제하기 원한다”. 무슨 말입니까? 교회에 ‘나는 있는데 주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존심은 있는데 주존심은 없는 교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되는 마음이 바로 자존심입니다.

예수가 내 삶의 주인이 됨을 인정하는 마음이 주존심입니다.


빌립이 복음을 전할 때 사마리아 성에서 많은 이들이 빌립을 쫓는데 그중 마술사 시몬도 침례를 받고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녔다녔습니다.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행 8장13절


그런데 한번은 사도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보고 그것을 돈으로 사고 싶어합니다.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행 8장18-19절


마술사 시몬은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고 싶은 좋은 의도로 보입니다. “내가 기도하면 성령이 사람들에게….” 그러나 베드로와 사도들을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행 18장20-21절


성경은시몬이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녔다고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몬은 “바로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라는 자존심이 앞선 전심을 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도 베드로처럼 저렇게 능력을 행하고 싶다라는 ‘내’ 가 ‘주님’ 의 뜻보다 앞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몬 자신의 자존심이 드러난 순간입니다. 예수를 마음의 주인으로 모신 사람은 “자존심”이아닌 “주존심”으로 살아갑니다.


한국에 승동교회라는 오래된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에 왕손 출신 목사님이 있었는데 그가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유람을 좋아해서 전국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그 때 그의 말고삐를 잡고 다니던 마부가 경동제일교회 엄씨성의 영수, 지금으로 하면 안수집사였습니다. 하루는 왕손과 같이 다니며 그를 전도할 기회를 찾다가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합니다. “나으리 예수 믿으시지요.” 그 소리를 들은 왕손이 빈정거리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너 같은 상놈이 양반이라도 되느냐?” 그 말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예수 믿는 도리는 그런 게 아닙니다. 예수를 믿으면 마부 노릇을 더 잘해야 합죠.” 라고. 이후 하나님의 은혜로 왕손은 가족과 함께 모두 예수를 믿게됩니다. 하루는 왕손이 승동교회 부흥회에 예배를 드리러 들어가는데, 마부 엄영수가 보인 것입니다. 그 순간 바로 달려가서 손을 잡고 반갑게 그를 향해 형님하고 부른 것입니다. 세상에 왕손이 상놈 마부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놀라서 말도 못하고 있던 엄영수에게 왕손이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가 다 형제 아닙니까? 엄영수가 나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형님이라 부른 것이 옳지 않습니까?” 라고. 나중에 그 왕손이 승동교회 목사가 됩니다.


자존심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주존심은 할 수 있게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살고 계십니까?


자존심으로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주존심으로 살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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